사랑으로 시작된 복수와 폭력에 대한 이야기
사랑
왕의 사랑 :
홍림에게 왕후와의 합궁을 명령하지만 결국에 합궁이 성사되는 계기는 왕이 한 말 속에 있다.
"너처럼 다정한 아이를 갖고 싶구나"
이 말은 홍림에게 합궁명령을 받아들이는 이유가 된다.
홍림의 사랑 :
그러나 합궁이후 정체성을 깨닫게 된 홍림이 욕망을 따르는 것은 왕에게 배반이 되고
권력은 복수의 도구가 되어 홍림에게 그 잔인성을 깨닫게 해준다.
왕후의 사랑 :
왕후는 남자들의 세계에서 대를 이어야 하는 여성의 역할로서 존재할 뿐이다.
그런 왕후가 자연스럽게 욕망을 따르고 정인임을 고백하는 행위는 주체성에 대한 선언이며
동시에 상대로부터 홍림의 정체성이 드디어 인정받게 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왕후가 쌍화병을 주는 대목은 두 사람 모두에게 감동이다.
왕을 향한 배반과 복수
홍림의 왕을 향한 배반은 정체성을 깨닫게 된 순간 시작되고
왕을 충성, 사랑했던 홍림에게 왕을 향한 복수, 그 결심과 실행의 과정은
왕후의 죽음을 믿게하는 권력의 폭력성에 그 원인이 있으며 이는 두렵고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다.
기회주의자 : 심지호와 역모세력, 외척
세 사람이 파국을 맞게 된 이후의 역사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진실을 은폐시켜 권력을 유지해 나갈 존재,
바로 기회주의자들의 것이 될 것이다.
권력의 폭력성
왕의 잔인성이 더해갈수록 왕권이 공고해지는 시대가 아닌
절대적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왕의 폭력행사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현실에서도 권력이 가진 폭력성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을 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은 아닐까..
제아무리 연약하고 위태로운 왕일지라도
홍림에 대한 왕의 사랑을 애절하게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충성을 담보로 한 사랑을 배반한 그 댓가
즉, 복수가 권력으로부터 집행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너무나도 잔인하다.
왕의 그림과 마지막 엔딩 장면
왕의 그림은 상상에 의해 그려진 오로지 자기만족을 위한 그림이다.
그에 반해 마지막 엔딩 장면 즉, 활 시위를 당기는 홍림의 이중적인 느낌은
왕의 그림이 결국 본인의 환상일 뿐이었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로 쓰인 것 아닐까.
사운드도 훌륭했고, 그 어떤 영화보다 영상과 대사가 시적이었다.
권력에서 분리된 남자와 그자체로 권력인 남자의 관계를 통해 권력적인 남성의 이미지를 분열시켜
영화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검을 휘두르는 액션장면들은 정말 그 어떤 액션 영화보다 무게감있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권력이라는 힘과 권력을 뺀 남성이라는 힘의 대결을 전달하고자 했던
의도가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인 듯하다.
장면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지는 영화의 맛, 바로 그 맛을 제대로 맛본 것 같다.
열정적인 감독과 배우들이 만든 정말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요즘 혼자보는 영화보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가 더 재밌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는데
함께본다는 것 때문이다.
얼마전 트와일라잇을 본 후 환호를 조용히 내지르던 귀워운 학생들의 반응에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음... 쌍화점을 볼때는 웃지 말아야 할 부분에 터져나오던 웃음소리가 신경쓰여
계속 질문을 던졌다. 왜 웃을까...
아마도 우리 스스로 의심하지 못할 정도로 타인의 고통과 당연하고 쉬운 복수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렛미인을 보면서 복수와 폭력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된 영화가 아닌가 했었는데
쌍화점을 본 후 다시 복수와 폭력에 대해 생각해본다.
권력자의 폭력행사와 기회주의자의 존재가 당연시 되는 세상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그래서 유하감독은 고려말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시작했던 것은 아닐까.






